주변 지인들이나 제 블로그 피드를 구독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 6월달에 3년 맞이 안식 휴가를 받아 이태리로 잠깐 여행을 갔다왔습니다. 이태리 전체를 다 돌기에는 시간 관계 상 로마와 북부만 돌았는데 마침 베니스에서 락 페스티발이 열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엄청 빠방한 라인업으로 하는 겁니다.
이런 정보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시면 검색하면 나와요 라고 밖에 할 수 없지만 사실 이 페스티발을 목표로 했던 것이 아니라 페스티발 몇 일전 밀라노에서 이틀간 열렸던 RadioHead의 이태리 투어가 목표였습니다만 표가 몇 달전에 이미 매진되었더군요. 꿩대신 닭인 페스티발이었지만 공연 자체는 훌륭했습니다.
겁나 큰 산 줄리아노 공원. 한국에 이 정도로 큰 공원은 보지를 못 한듯 하지만 그늘이 없어서 태양에 완전 익어 버렸어요. 생긴지 얼마 안 된 공원인건지 구글 어쓰나 버추얼 어쓰 모두 잔디가 없는 모습만 나오는군요.
공연 스케쥴 가이드. 두번째 날의 헤드라이너는 Vasco Rossi 라고 하는 이태리에서 매우 유명한 뮤지션인듯 한데 뮤직비디오 나온걸 보니 진짜 아저씨… 알고보니 이 페스티발은 98년부터 매년 베니스에서 열리는 나름 역사 있는 페스티발이더군요. 다른 나라 페스티발 못지 않게 빠방한 라인업을 가지고 계속 해온듯해요.
제가 본 날은 페스티발의 첫 날로 헤드라이너는 Linkin Park 였습니다. 사실 Linkin Park는 예전 한국 첫 공연을 보기도 했고 한 번 더 오기도 했었지요. 그때 공연과 비슷하겠거니 크게 기대는 안 했었습니다. 거기다 최근에 나왔던 앨범은 좀 실망이었거든요.
페스티발은 총3일 동안 진행되었고 마지막날의 헤드라이너는 Sting이 활동했던 The Police였습니다. 저는 재결성 했다는 소식을 못 들었는데 언제 재결성 한건지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공연 중간에 틀어주던 참가 뮤지션들의 뮤직 비디오 중에 The Police 시절의 뮤직 비디오
오후 3시부터 이태리 밴드들을 시작으로 페스티발은 막을 열었습니다.
절대 알수 없는 이태리 밴드. 타임 테이블 찾아보면 확인은 할 수 있겠지만… 그나저나 이태리 밴드들 정말 음악 못 하는게 밴드 대부분의 스타일이 하드 코어인데 그루브가 거의 없어서 달리기만 하더라는 겁니다. 보면서 우리 나라 밴드 절대 못 하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만 들더군요.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 저도 중앙 콘솔이 만들어준 그늘 밑에서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겁 없이 돌아다니다가는 완전 익어버리겠더라고요. 썬 크림이나 바르고 갔으면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그것도 아니라…
일용한 양식과 암표로 산 티켓. 세금 포함 48유로인데 40유로에 쇼부 치고 구했습니다. 처음에는 50유로를 부르더군요. 정상적인 48유로 티켓을 팔고 있는데 암표 주제에 50유로를 부르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건지…
드디어 메인 밴드의 시작을 알리는 Iggy & The Stooges. 제가 알기로 이기 팝 아저씨 50대가 훨씬 넘어 60에 가까운 걸로 아는데 에너지가 넘치다 못 해 아주 쏟아 내시더군요. 해가 지려면 한참이나 남은 시간에 태양이 너무 강해 연신 fuck the sun을 외치면서 노래하시는데 은퇴하시려면 최소 10년은 더 활동해야 할 것 같아요.
Queens of the Stone Age. 저는 이들의 히트곡의 뮤직 비디오만 보고 비호감이라 신경을 쓰지도 않았던 밴드인데 공연 보고나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라이브도 잘 하고 노래도 좋더라고요. 앨범도 구해봐야겠어요. 관객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중간에 이태리어로 인사하고 다들 좋아 죽는거보니 관객은 어느 나라 가도 똑같구나 하는 생각만…
8시가 넘어가니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한국보다 위도가 높아서 가뜩이나 해가 긴데 썸머타임까지 하는 중이라 9시가 되야 해가 지더군요. 덕분에 야경 찍을 수 있는 시간까지 밖에서 놀기가 힘들어서 여행하면서 찍은 야경 사진도 얼마 없네요.
쓰레기 절대 안 치우는 사람들. 맥주 캔 같은 것들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현지 사람들도 쓰레기 안 치우는데 여행자인 제가 굳이 쓰레기 치울 이유는 없죠. 그냥 막 버렸습니다. 사실 맥주도 한 잔 밖에 못 마셨어요. 돈을 너무 안 가져가서. 하이네켄 생맥주가 5유로나 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드디어 올라오는 헤드라이너 Linkin Park. 이태리 얘들도 겁나 좋아하더군요. 떼창 수준이 한국 사람들 못지 않더라고요.
사운드나 무대 셋팅 같은 공연에 필요한 것 모두 아주 좋았어요. 특히 사운드는 지금까지 봤던 공연 모두를 통털어 최고였어요. 공연 스탭들의 노련함의 승리라고 해야 할까요? 아믛든 질이 틀리더라고요. 링킨 파크 혼자서만 거의 1시간 반 넘게 했던 것 같지만 저는 버스 시간의 압박 때문에 중간에 걸어 나와야했습니다. 버스를 놓치면 섬까지 들어가기 위해 엄청 긴 다리를 걸어가야 했거든요. 버스가 전력으로 10분동안 달릴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니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이날 서브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는 Sex Pistols였습니다. 저는 더위에 지쳐서 메인 스테이지를 떠나지 않았는데 얼굴이라도 볼걸 그랬어요. 이렇게 대충 6~7시간 정도 뙤약볕 밑에서 엄청나게 달리고 왔습니다. 스테이지 근처를 슬슬 돌아다녀 보니 진짜 동양인은 딱 저 하나더군요. 웬지 주눅드는 느낌이기도 했지만 열심히 달렸습니다.
다음에 다시 외국으로 여행 나갈 일이 있다면 가장 먼저 목적지 나라의 공연 스케줄을 확인 한 다음에 여행 스케줄을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멋진 페스티발 가서 지중해의 태양을 온 몸으로 맞아가며 죽도록 놀아서 좋긴 했지만 라디오헤드를 못 봤다는 아쉬움은 없어지질 않더라고요. 공연 좋아하시는 분들 여행 가실 때 꼭 체크하시기 바랍니다.